4월, 유럽각지의 바둑계 소식을 들려줬던 한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북한 주최 '제2차 세계무도대회의 바둑 소식'을 전한다?[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한상대 교수는 호주 팀 단장 겸 선수로 8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 29일까지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한교수. 과연 북한 바둑행사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타이젬에서는 한상대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북한 방문기는 타이젬 칼럼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8월 27일(일)-2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로 왔더니 어제 점심 약속을 한 조경화 부위원장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 그는 우리를 호텔 앞 숲 속으로 먼저 데려간다. 그 속에는 대합 조개를 굽는 곳이 있다. 조개 수십 개를 몇 줄로 세워 놓은 뒤에 휘발유 병 하나만 들고 와서 불을 붙이고 적당히 휘발유를 부어가며 조개를 굽는다. 솜씨가 아주 능숙하다. 익은 조개를 칼로 연 후 꺼내어 먹는데 맛이 좋다. 걱정하던 휘발유 냄새도 안난다. 운전수도 함께 동석했다. 우리는 북한 술과 안주 삼아 조개만 먹고 식사는 안시켰다. 내가 냉면을 좋아하니까 조부위원장이 점심은 냉면으로 하겠다고 한다. 조부위원장이 나에게 “다음엔 꼭 가족과 함께 오십시오. 서해안 남포에 모시고 가서 정말 조개를 잘 하는 집으로 안내 하겠습니다” 한다.
오후 관광 시간 때문에 시내로 안가고 냉면은 다시 선수촌 내 골프장에서 먹었다. 평양에서 유일하게 두번 온 집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북한 사람에게 식사 대접을 받았다. 신사장이 나에게 “트림을 하니까 조개 먹을 때 안나던 휘발유 냄새가 나는데요” 한다. 내가 “우리 어릴 땐 배탈나면 약으로 휘발유도 먹이고 그랬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하며 웃었다.
식사 하면서 조부위원장은 “제가 호주에 세번 다녀 왔습니다. 마지막 방문은 지난번 북한 공연단과 같이 갔을 때였습니다” 하니까 항상 조용하던 진박사가 “저는 그 공연을 모두 쫓아 다니며 다 봤습니다” 한다. 조부위원장은 이어 “호주가 부러운 면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한번은 스테이크를 시켜 먹는데 고기가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이걸 우리 북조선 인민들에게 먹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맛도 좋고 값도 싸고요” 그리고 보니 북한 불고기는 전부 양념을 해서 다진 것으로 양이 작았다.
그가 “북에 있을 때 구경을 많이 하시고 남쪽에 사실대로 전해 주십시오” 한다. 내가 “북에서는 안내원만 따라 다녀야지 개인이 자유 행동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도 우리가 제약을 받지 않습니까?” 하니까 안내가 “제가 어딜 가는 곳을 막은 데가 없었는데요. 다니고 싶으신 데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한다. 신사장이 “일반 사람이 다니는 시장과 달러를 안받는 일반 식당에도 가고 싶습니다” 하니까 “알겠습니다” 한다. 이렇게 답은 했지만 안내는 끝까지 그런 장소에는 우리를 안 데려 간다. 옆에 있던 조부위원장이 “제가 남조선 서울에 갔을 때 저도 마음대로 못 다녔습니다. 일반 인민들과 대화도 하고 싶었는데 안내가 허용을 안해주었습니다. 북, 남이 다를것이 없을 겁니다” 한다. 내가 “남한은 보호 차원에서 그럴진 몰라도 감추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 줄로 저는 압니다”
우리가 여러명에게 확인 해 본 결과 북한에서는 일반 노동자 월급이 약5천원이다. 그 외에 국가에서 주는 배급을 탄다고 한다. 요즘은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한다. 명절이나 김일성 부자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고기, 생선 등의 배급이 더 나온다고 한다. 안내원 얘기로는 1달러가 28원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달러에 3천원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어디에서나 있는 현상이다. 북한은 그 차이가 심할 뿐이다. 평균 월급이 2불 정도라는 얘기가 된다.
 ▲ 개선문. |
오후에는 개선문을 먼저 갔다. 크기가 파리 개선문 정도다. 바로 옆에 김일성 경기장이 있다. “저 자리에서 수령님이 제일 먼저 연설을 하신 곳입니다. 그 분께서는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전쟁에서 모두 이기셨습니다.” 개선문 위에는 김일성장군 노래 가사가 적혀 있는데 나이 먹은 개선문 여자 안내원이 감정을 넣어서 또박 또박 그 가사를 암송해 준다. 또 우리 일행이 온다고 해서 임시로 차린 노점상에서 북한 소개 책자, 간단한 기념품 등을 팔고 있다. 나는 소나무와 학이 있는 손자수 하나를 샀는데 12불이다. 내가 평양 그림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이 호텔에서는 7달러인데 여기서는 왜 10달러이냐” 고 묻자 곧 값이 7달러로 내려 갔다. 개선문은 시내 한 복판에 있는데 주변이 너무 한산 하다. 넓은 길에는 차가 띄엄 띄엄 지나 가고 인적도 드물다. 도시의 생동감은 찾아 볼 수가 없다.
 | 다음에 간 곳은 주체탑이다. 대동강 변에 170미터 높이의 대형탑이다. 탑 아래 쪽으로 주체 사상을 찬양 하는 시가 적혀 있다. 일요일이라 꼭대기에 올라 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안 한다고 한다.
나는 강변으로 가봤다. 건너 편으로 평양 중심지 중구가 보인다. 큰 건물들을 중심으로 보기 좋게 발달 되어 멀리서 보는 평양이 꽤 멋지다. 대동강은 한강 보다 폭이 작고 능라도도 여의도보다 훨씬 작다. 주체 탑을 중심으로 대동강 복 판에 두 분수대가 높이 치솟는 물을 뿜고 있었다.
◀ 주체탑. |
안내원이 나에게 “한강변에도 아파트가 많이 서고 발달 됐다고 들었습니다” 한다. 내가 “그 지역을 ‘강남’이라고 부릅니다. 1970년대부터 개발 되어 지금은 강북의 옛 서울과 인구가 맞먹는 신도시가 하나 들어섰지요. 한번 가보면 놀래실 겁니다” 했다. 평양에는 도시의 주요 중심 부분(Focal point)에는 어김 없이 주체 탑, 개선문 등의 건축물이 들어 서 있어 도시를 장식하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6. 25 당시 평양 인구가 40만 명이었는데(서울은 당시 60만) 미국이 폭탄을 41만개를 떨어트려 도시를 완전히 재로 만들었다고 설명 한다. 그래서 새로 세운 도시가 지금의 평양이라고 한다.
내가 안내원에게 “아까 개선문에서 미국과 일본과의 전쟁을 이겼다는데 미국은 6. 25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일본은 무슨 전쟁입니까?” 하니까 “수령님이 일본을 이겨 우리나라를 해방시키시지 않았습니까?” 한다. 내가 “광복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내어 자연히 얻은 거죠” 하니까 “뭘 모르시는 군요. 미국이 일본에 타격을 준 것은 아주 일부고 수령님이 일본의 광동군을 무너트리고 해방을 얻어 낸 것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러시아 참전은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해방 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러시아군에 속해 던 33살의 김일성 대위가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입성한 것은 누구나 아는데 누가 일본으로부터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다는 겁니까? 미국이 아무리 미워도 역사 날조는 말아야지요”. 하니까 “교수님은 눈치가 아주 없으십니다. 이상한 발언도 잘 하시고요. 중앙정보부 훈련을 안 받고 오신것 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조국에 대해 선의를 갖고 계신 걸 알아서 제가 이제는 오해를 안 합니다” 라고 답한다.
이 날 마지막 방문지는 대동강에 떠 있는 푸에블로(Pueblo) 호였다. 놀랍게도 어제 우리를 전쟁기념관에서 안내하던 나이 먹은 여자 군인이 또 설명을 맡는다. 내가 “평양에 안내원이 한명뿐입니까? 기념관은 어떻게 하고 이 곳에 왔습니까?” 하고 묻자 웃으며 “기념관은 지금 괜찮습니다” 한다. 괜찮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 푸에블로호. |
1968년 초 미국 정보수집 보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게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나포된다. 미해군 장교, 수병, 민간인 등 83명을 태운 푸에블로호는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의 3척의 무장 초계정과 2대의 미그기에 의해 나포되었다. 당시 미국은 즉각 극동지구 제5공군의 비상출격 대기령,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의 원산 근해 급파 등 무력시위를 하는 한편, 소련에 중재요청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미국은 한국정부의 반발을 무릅쓴 채 북한측과 28차에 걸친 비밀협상을 했다. 결국은 미국이 영해침범을 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나포된 지 11개월 만에 선체와 장비는 몰수당한 채 판문점으로 승무원 82명과 시체 1구가 송환되었다.
1866년 미국상선(이 곳에서는 ‘침략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 80톤)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강제로 통상을 요구하고 조선측은 이를 거절한다. 미국 선원들은 중군 이현익(李玄益)을 납치하고 셔먼호의 대포에 맞아 조선군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평양감사 박규수(朴珪壽)는 군, 민을 동원하여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시킨다. 이후 미국은 1871년 응징적인 조선원정을 단행하여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생하게 되었다. 제너럴셔먼호 격파 기념비가 대동강 변에 세워 졌고 바로 그 밑에 푸에블로호를 정박시켜 놓았다.
배 안에 들어 가니까 먼저 비디오를 보여 주고 이 배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선장과 선원들의 자백서를 벽에 걸어 놓았다(미국은 아직 문서 공개도 안하고 부인하고 있는 상태). 1천톤 밖에 안 되지만 정보 수집함이라 그런지 통신실의 장비가 대단했다. 배 내부를 다 돌아 보고 나오다가 내가 그 곳을 지키는 군인에게 이 배가 지금도 움직이냐고 묻자 “물론입니다” 하고 답한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원산 앞 바다에서 1998년에 이 큰 배를 어느 경로로 대동강까지 끌고 왔을까? 북한은 동해와 서해가 연결이 안되어 있는데. 대동강은 서해로 흘러 남포에서 만나는 강이다. 부산 앞 바다로 몰래 지나갔을 리는 없겠고. 혹시 제주도 아래쪽 공해로 해서? 지도를 놓고 봐도 내 머리로는 해답이 잘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