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48.1%를 기록하며 꿈의 5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MBC 월화 사극 '주몽'이다. 시청률의 고공행진으로 '주몽'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첫 회부터 시청한 것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를 한번 보기 시작하니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주몽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도 좋지만 주몽의 충직한 신하이자 부여 철기방의 책임야장 모팔모에 더 정이간다. 한나라 철기군에 대항하기 위해 평생을 강철검을 만들기 위해 살고, 강철검을 만든 후에도 강철검 보다 더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 또 주몽을 끝까지 믿으며 따르는 한결 같은 마음가짐이 마음에 든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시청자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모팔모는 드라마 '주몽'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다.
한국 바둑계에는 2%가 부족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할 수 있다는 한결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모팔모와 같은 젊은이 조한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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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전 우승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전은 이세돌이 1대2로 1승을 뒤지고 있었지만 이세돌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세돌이 최근 전광석화 같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자가 매번 중요한 순간에 져 '2% 부족한'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조한승이 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12월 12일 천원전 결승에서 조한승은 2%가 부족한 기사가 아닌 98%가 꽉 찬 기사로 거듭났다.
"어제 대국 끝내고 복기를 간단히 하고 세돌이랑 철한이랑 당구장에 갔어요. 당구 실력은 250 정도? 바둑으로 말하면 중급정도예요." 13일 한국기원에서 만난 조한승은 침착하다.
입단해 제한기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지만 결승 무대에서는 늘 한걸음 물러서야했기에 그에게 '생애 첫 타이틀 홀더'라는 점 외에 가슴 벅찬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원전 결승전 상대가 세돌이라고 해서 별다른 느낌은 없었어요. 어려운 상대였는데 전체적으로 세돌이가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이기고 첫 타이틀을 따니 기분은 좋아요."
이세돌(2000년)-박영훈(2001년)-송태곤(2002년)-최철한(2003년)이 천원전에서 우승을 하고 한국의 신4대천황으로 떠올라 천원전은 스타 등용문이라는 말이 있다. 조한승도 천원전 우승을 발판으로 도약을 했으면 한다. "스타 등용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이창호 사범님이 출전을 하지 않으면서 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이사범님은 많은 기전을 휩쓸고 있잖아요. 타이틀 따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이사범님이 출전하지 않아서 신예기사들이 도전을 할 수 있었죠."
"첫 우승으로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아직은 뭐라 장담을 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봐야죠. 제가 너무 무뎌서 그런가요? 우승을 해본 사람이 또 한다는 말을 하잖아요? 무시 못 할 이야기 같아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고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승을 해본 사람이 또 한다는 것을 무시 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우승을 또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 그 당시 심정을 묻고 싶다 1995년에 입단한 그는 2001년에 삼성화재배 본선, 최다대국수를 기록했고 2002년에는 최다승상, 연승상을 타며 돋보이는 성적을 냈다. "신예기사들만 출전한 기전에서 우승을 하고 막 성적을 낼 단계였어요. 하지만 최다대국, 최다승 등 기록들은 중요한 대국에서 거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예요."
1990년대~2000년대에 정상으로 비상하려는 기사라면 피해갈 수 없는 관문 이창호. 그는 2003년 국수전과 LG정유배 도전기를 벌였다. 결과는 3대0. 이 결과에 내상을 입어 슬럼프 아닌 슬럼프 시기를 보낸 것은 아닌지. 사실 조한승은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슬럼프라는 단어 선택이 썩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특별히 슬럼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바둑에서 자꾸 지고 나면 자신감이 없어 가끔 힘들기는 했지만…. 또 바둑을 두고 이기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없어져요." 조한승의 슬럼프 극복 방법은 이길 때 까지 바둑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 | |  | 본인은 특별히 슬럼프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프로기사 11년 경력을 보며 중요한 한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의 시작은 이창호에게 쓴 패배의 맛을 본 이후 부터라고 진단했다. "이창호 사범님이요? 아무래도 2003년에 이창호 사범님한테 도전을 했을 때는 지금보다 실력이 더 약했겠죠. 경험도 없었고요.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잘 두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거꾸로 놓고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제가 이창호 사범님이어도 저를 쉽게 이겼을 것 같아요. 고수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예기치 않은 수를 둔다거나 쉽게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껄끄러울 텐데요. 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질리도록 대국해 보고 싶은 기사가 있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한 뒤 "굳이 꼽자면 이창호 사범님이요. 많이 졌지만, 예전과 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 보고 싶고,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요."라고 말한다.
98%가 채워진 '조한승' 아마 '2%가 부족하다'는 말은 조한승의 여러 준우승 경력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부족의 원인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어요. 크게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2%만 부족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거꾸로 생각해서 98%가 채워진 것이잖아요? 대국이 유리하면 제 기분에 치우치고, 불리해도 기분에 치우치고…. 이런 마음가짐이 오판인거죠, 착각일 수도 있고요. 형세판단이 약하다는 말도 되네요. 또 끈기나 승부욕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변화를 시도했고 성공했기 때문에 천원전 우승을 획득한 것이 아닌지.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하지만 변화를 준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성격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고요. 예전보다 느슨해지는 것은 줄어든 것 같기도 해요. 대국을 하다보면 가끔 나오기도 하지만요. 꾸준히 보완해 나가려고요."
 |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가? 그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노력했기에 그는 국내정상에 선 기쁨을 누릴 수있다.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정상에서 맞서 싸워도 부서지지 않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2007년, 조한승의 신명나는 승전보를 접할 수 있기를.
모팔모는 한나라에 대항하고자 강철검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는지 잘 만들어지지 않더라.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안해본 것이 없다. 결국 약간 불손한(?) 과정으로 강철검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한나라에서 부여로 온 야장들이 있는 철기방에 무장침입해 재료를 알아낸다.) 그 뒤 모팔모는 강철검 보다 더 강한 무기를 만들어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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