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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이슈

한국 바둑계가 '천년의 기사'를 선정한다면?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 등이 선정 후보

2007-07-03 오후 2:44:56 입력 / 2008-01-25 오후 4:54:59 수정

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을 쓰는 한상대 교수가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에
[천년의 기사]라는 영어 수필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어 내용을 소개한다. 더욱 자세한 소식은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기행에서 감상 할 수 있다.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기사를 뽑는다면 누가 될까?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는 지난 일년간 활약한 내용에 따라 최우수 기사를 뽑는다. 또 바둑계 10대 뉴스도 선정된다. 스포츠계는 MVP를 정하고 연예계도 최고 인기의 스타를 정한 후 시상을 한다. 한편 세계 10대 뉴스, 국내 10대 뉴스도 각 언론기관이 다투어 보도한다.

10년(Decade)이 끝날 무렵이면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인물, 사건들이 뽑힌다. 1년에 비해 자연 10배의 무게가 실린다. 1세기(Century)가 바뀌는 경우에는 지난 1백년간 그 분야에서 가장 위대하고 독보적 존재가 「세기의 인물」로 선정된다.

우리는 7년전 천년(Millennium)이 바뀌는 서기 2천년의 문턱을 넘었다. 지구상에 살다가 간 인간 중에선 희귀한 천년대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력 기원으로 세번째 천년대로 진입하는 것을 기독교권인 서양 국가들은 종교적인 의미까지 부여하며 각종 예언도 성행하고「새로운 천년 맞이」의 다양한 준비를 국가적 차원에서 하고 있다.

지난 천년을 1년으로 친다면 12월 말쯤으로 계산 될 수 있는 1995년 12월 31일 미국의 워싱톤 포스트지(The Washington Post)는 지난 천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과 사건들을 분야별로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선정하게 한 후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천년의 인물」로는 몽골의 정복자 징기스칸이 선정됐다. 인간과 기술의 이동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유럽 역사에 기본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이유였다. 한국인도 인종적으론 몽골족에 속하는데 같은 인종이 천년의 인물로 뽑힌 것은 반가운 일이나 서양에선 징기스칸을 단순히 지독한 약탈자로만 표현하고 있어 우리를 착잡하게 만든다.

음악 경우에는 작곡부문에「피가로의 결혼」등 많은 곡을 쓴 모짜르트(W.A. Mozart), 성악부문엔 지휘자 토스카니니(A.Toscaninni)가 “인류 역사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목소리”라고 극찬했던 카루소(Enrico Caruso)가 정해 졌는데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해서 항상 듣는 작곡자와 성악가가 나란히 선정되어 나로서는 그 결과에 대해 더 할 것 없이 만족하고 있다.
이 밖에 과학자로는 상대성 원리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화가엔 미켈란젤로 (Michaelangelo), 여배우로는 스웨덴 출신의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남배우에는 의외로 만화영화의 캐릭터 벅스버니(Bugs Bunny)가 선정 됐다. 그리고 ‘천년의 악인’으로는 히틀러(Adolf Hitler)가 스탈린을 누르고 선정됐다.
발명에는 인쇄술, 서적으로는 존슨(Samuel Johnson)이 만든 첫 사전. 살기 좋았던 시절과 장소엔 16세기의 베네치아(Venezia), 가장 큰 실수로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 등으로 결정됐다.

본론으로 돌아오자. 지난 천년간 가장 위대한 기사를 정하기 위하여 후보들을 내 세운다면 과연 누가 있을까? 바둑 역사가 길다고는 하지만 기사의 능력을 판가름 할 수 있는 기보와 같은 자료는 일본에서 프로제도가 생긴 4백여년 전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지난 5십여년 동안에 바둑 발전의 대부분이 이루어 졌다는 설을 받아 들인다면 장본인들이 지금 거의 살아 있거나 현역 기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현존 인물 중 후보가 많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 내가 추천하는 6명의 후보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우선 바둑 실력 13단으로 불리운 홍인보(本因坊) 4세 도샤쿠(道策)가 떠오른다. 그는 돌의 효능을 대위(對位)시켜 분석하는 소위「수 나누기식」이론을 만들어서 근대 바둑의 창시자로도 불리운다. 그는 자신의 돌을 가볍게 버리면서 상대방의 돌을 우형으로 이끄는 방법, 세련된 변신술 등으로 그가 벌써 3백여년 전에 바둑의 본질을 터득한 달인이었음을 오늘날 전해오는 그의 기보가 말해 주고있다. 그는 인간이 바둑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 놓은 인물이었다.

다음으론 중국 출신으로 13세에 도일하여 기다니(木谷)와 함께 신포석을 발표. 일본 열도를 열광 시키며 바둑 붐을 일으키고 현대 바둑을 열어간 살아 있는 기성 오청원(吳淸源)이 있다. 그는 17년간 일본의 최고수들을 상대로 벌인 10번기에서 전승을 거둔 위대한 승부사일 뿐만 아니라 그의 바둑에 대한 구도적 자세는 지금도 뭇 바둑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범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발상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 시키며 반면을 주도해 나아갔으며 그의 빠르고 유연한 기풍은 지금도 무릇 바둑 고수들이 그의 기보를 연구대상 1호로 삼는 이유다. 그의 바둑은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 같다.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고 생동감이 샘물처럼 솟아 흐르며 간단하고 아름답다.

현존 승부사 중 다케미아(武宮正樹)를 후보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바둑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큰 인물이다. 그의 중앙 경영에 바탕을 두는 두툼한 대세 바둑은 이제까지 실리를 존중해온 기존사고의 기조를 흔드는 발상의 전환이요,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의 우주류(본인은 자연류라 명명)라고 불리우는 세력 바둑은 전 세계 아마추어들이 감명을 받으며 흉내를 내게 만들었고 프로기사들도 다투어 화점 바둑을 두게 만들었다. 그의 바둑은 큰 모양의 울타리를 쳐놓고 그 속에 삭감하러 들어온 상대편의 돌을 공격하며 주도권을 잡는 약간은 허황되고 위험할 수도 있는 스타일이다.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중원을 향한 그의 낭만과 모험 정신은 넉넉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시도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오청원 기성 이래 현대 바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아닐까.

한국의 조훈현(曺薰鉉)은 어떤가? 세계 최연소 9세 입단, 2십년간 한국 바둑의 일인자로 군림하며 세번에 걸친 천하통일, 세계대회 싸이클링 히트, 자기 제자를 세계 최강자로 길러낸 스승, 아직도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수 있는 기량 등. 누가 뭐래도 그는 분명 한국의 간판 스타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한 인물의 출현으로 한 나라의 바둑 수준을 2십년쯤은 앞당긴 그의 공로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바둑은 마치 전성기 때 캐시어스 클래이(무하메드 알리)를 보는 것 같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잽을 날리며 근육 덩어리 소니 리스튼을 넘어뜨리던 날렵한 푸트워크(Foot work-행마)와 끊어 치는 펀치는 천하 무적이다.


▲ (왼쪽부터) 조치훈, 조훈현, 이창호.

현재 일본의 일인자 한국인 조치훈(趙治勳)도 만만치 않은 후보다. 6세에 도일한 후 그의 정상을 향한 집념과 그 과정의 드라마. ‘지면 절망 밖에 없다' 혹은 ‘목숨을 걸고 둔다’ 등의 어록이 그의 트래이드 마크가 된 인물. 그는 일본 바둑계의 실질적 천하 통일인 대삼관을 두번씩이나 일구어낸 인물이다. 특히 ‘한번 정상에서 물러나면 다시는 일인자로 못 돌아온다’는 이제까지 바둑계의 징크스를 깨고 역사의 흐름을 역류 시킨 최초의 인물이 된 것이다. 그의 바둑은 실리에 철저하며 수습에 능하다. 최선을 다해 격렬하게 부딪혀가고 일류기사 중 바둑을 가장 열심히 둔다. 그의 바둑 몰입 100%의 진지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젠 이창호(李昌鎬) 차례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10대 중반부터 세계최강 대열에 올라선 그의 실력이나 기록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창호는 1990년 15세의 나이로 그의 스승 조훈현으로 부터 국수위를 쟁취해 전세계 바둑계를 놀라게 하더니 그 후 승승장구를 거듭 우리나라의 일인자, 세계의 일인자로 직행했다. 그 것도 모두 세계 최연소 기록으로. 이창호의 출현은 바둑 본질에 대한 회의를 일으킬 만큼 충격적이었다.

기존 관념으론 바둑은 인격, 기술, 경륜등이 합하여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느 정도는 들어야 실력이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창호의 기록은 이 관념을 간단히 깨어 버렸다. 어린 나이에도 부동심(不動心)을 터득할 수 있고 실력 세계1인자가 될 수 있음을 그는 보여 주었다.
그의 바둑은 지금도 변하고 있으나 그의 기풍의 특질은 두텁고 정확한데 있다. 번뜩이며 화려하지 않으나 안정감이 있으며 쉽고 안전하다. 그의 바둑은 현재 세계최강으로 전세계가 그를 쫓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창호가 우리를 더욱 겁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바둑이 지금에야 출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인, 조남철, 유창혁, 서봉수.

이상 열거한 기사들 외에 어떤 사람들이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우리나라 부터 보자.
해방 후 바둑 불모지에 씨를 뿌린 조남철(趙南哲)이 있다. 기도 보급과 함께 그는 약 20년 간 우리나라 바둑계 1인자로 독주를 했다. 바둑 프로제도가 정착하면서 조남철 아성을 무너뜨리고 약 10년간 한국 바둑계의 왕노릇을 했던 김인(金寅)도 있다.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이 된 현재 한국 바둑의 4축 중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봉수(徐奉洙)와 유창혁(劉昌赫)이 있다. 그들은 조훈현의 뒤를 이어 잉창기배를 차례로 우승을 하였으며 서봉수는 진로배 국가 대항전에서 일본 중국의 강자 들을 혼자서 9연승 이란 놀라운 기록으로 싹쓸이 우승을 해냈으며 유창혁은 세계대회의 우승권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사들이다.

일본은 바둑 역사가 길어 자연 후보가 많다. 도샤쿠, 오청원과 함께 3대 기성으로 불리는 흑번 필승의 승부사 슈사쿠(秀策). 또 힘 바둑의 대명사였던 조오와(丈和) 외에도 도쿠가와(德川 幕府)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고수들이 있었으나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생략하겠다.

현대에 와서 확실히 1인자 시대를 구축했던 인물중 사카다(板田榮男)와 고바야시(小林光一)가 있다. 이외에도 후지사와(藤澤秀行), 중국계 임해봉(林海峰), 오다케(大竹英雄), 가토(加藤正夫), 이시다(石田芳夫)등 한 시대를 누볐던 기사들이 있고 현역 중엔 요다(依田杞基), 한국계 류시훈, 중국계 왕리청(王立誠)이 있다.

중국에는 현현기경(玄玄棋經) 저자 등 역사적인 인물이 많을 텐데 불행히도 기록이 없다. 2백여년 전 청(淸)나라 고수들의 기보는 전해온다. 오송생(吳淞笙)은 나에게 그들의 힘이 자기보다 더 센 것 같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객관적 전력이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 되지 않은 상태다. 현대에 와서는 중국 바둑을 세계 수준에 올려 놓은 녜웨이핑(攝偉平)과 그 뒤를 잇는 마샤오춘(馬曉春)과 창하오(常昊)가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한국 바둑계가 세계 최초로「천년의 기사」를 선정해 줄 것을 제안한다. 나에겐 다른 제안도 있다. 수십명의 후보를 올려놓고 그 중 10명을 뽑아「천년의 10 걸」을 정하는 것이다. 한국 기사 중「세기의 기사」및「세기의 10걸」을 선정하는 것은 어떨까? 하나의 천년과 세기가 함께 시작하려는 지금 시기적으로 적절한 것 같다.

세계 바둑을 제패한 국가가 지난 천년과 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행사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먼저 선정, 발표하면 일본이나 중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한 일이다.

선정된 기사들을 위한 상금과 기념행사를 마련해 줄 후원자나 기관이 나선다면 더 보람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사정이 어려워도 미래를 위해 이런 종류의 문화행사는 지속 되어야 할 것이다.



TYGEM / 한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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