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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만으로 짠한 사나이들
이젠 비운의 승부사에서 미래를 여는 바둑인으로 변모한 홍맑은샘과 하성봉 인터뷰
2016-08-22 오후 5:39:40 입력 / 2016-12-07 오후 2:39:54 수정

▲ 어린시절 숱한 고난을 딛고 한국와 일본에서 바둑교육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홍맑은샘과 하성봉 사범.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즈음이 가장 바둑이 상승세를 타던 때가 아닐까 한다. 당시 조훈현 서봉수의 위력이 아직은 서산에 해가 걸려있었고, 유창혁 이창호는 중천에 떠 있는 해였다. 또 이세돌이란 신흥고수가 여명으로 다가올 때이기도 했다. 한국4인방이 세계4인방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프로바둑은 물론이고 아마바둑도 인기절정이었다. 프로와 아마가 만나는 '프로아마10강전'이란 이벤트대결이 있었다. 인기절정의 프로와 아마기사 10명이 1위는 1위끼리, 2위는 2위끼리 격돌하는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2000년 당시 프로 1,2위는 세계선수권자인 이창호 유창혁이었다. 프로바둑에서 '이유'가 있다면 아마바둑에는 '홍하'가 있었으니, 홍맑은샘과 하성봉이 그 주인공이었다.

바둑을 공부하면서 아마정상이 목표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던 불운의 아이콘들이었지만, 그 당시 절정의 이창호 유창혁과 정선 정도에 비틸 수 있었던 '유이한' 아마 선수들이 바로 홍맑은샘 하성봉이었다. 2000년 언저리는 '이유'가 있어서 세계최강국에 올라섰듯 '홍하'가 있어서 세계아마바둑도 한국의 독차지였다.

홍맑은샘과 하성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마바둑계를 석권하기 시작할 때, 아마대회에서 얻은 상금이 1년 합계 무려 3000만원을 넘기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동안 홍맑은샘은 26개, 하성봉은 28개의 우승컵을 차곡차곡 쌓았다.

최근 날고 긴다는 연구생 출신 아마기사가 한해에 우승 두 번 하기가 버거운 현실임을 떠올리면, 그들이 대략 5년~7년 동안 거둬들인 수확은 실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군소대회는 생략했음이다. 당시 프로랭킹 10위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았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 지 상상이 될 테다.

▲ 인천공항에 떨어지자 마자 전주로 한걸음에 달려온 홍맑은샘과 그를 반겨주는 하성봉이 전주에서 회포를 나누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홍도장'을 경영하면서 일본바둑 부활의 젖줄이 되고 있는 홍맑은샘이 방한하여 서울 집에 들리지도 않고 곧장 전주로 내려갔다. 제주출신이며 서울서 살아왔던 홍맑은샘이 인천공항에서 곧장 전주로 내려온 것은 바로 그의 절친 하성봉이 전주에서 도장사범을 하고 있어서다.

보다 상세한 이유인 즉, 일본 홍도장에서 바둑을 연마하던 아이 한 명을 새롭게 하성봉이 있는 전주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본디 스승으로서 아이의 근황과 절친 하성봉과 진한 회포를 풀기 위함이라고 했다. 또 며칠 있으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딴 맑은샘배 어린이최강전이 개최되니까 겸사겸사 방한했을 것이다.

운 좋게 기자는 그들의 회포현장에 합석하게 되었고, 그 이름만으로 짠한 사나이 홍맑은샘 하성봉이 나눈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어린 시절, 없어서 슬펐던 이야기와 바둑에 관한 싱싱한 생각들, 그리고 한일양국에서 미래를 키우는 이야기 등을 술잔에 녹여보았다. 홍맑은샘은 1981년 12월생이며 하성봉은 1982년 1월생이다.

▲ 맑은샘배에서 심판위원으로 참가한 두 절친.

"하사범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절대 아니고요. 우리 아이들 잘 있는 지 궁금해서요. 하하"

홍맑은샘은 일본에서 오자마자 이곳 전주로 곧장 내려오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하기야 그가 운영하는 홍도죠(홍도장)은 한국도장으로 유학을 많이 보낸다. 장수영도장에 1명, 충암도장에 2명, 양천대일도장에 2명. 그리고 이곳 전주 강종화도장에 1명을 보냈다.

얼마 전 국수산백배 타이젬 기사에 사진 한 컷이 들어갔는데, 바로 그 때 소개한 토모에라는 여자어린이가 바로 홍도장 아이였다. 그리고 홍사범은 오는 길에 또 다른 일본 여자어린이를 한명 데리고 왔다. 홍도장에서는 왜 한 곳에 아이들을 유학 보내지 않고 관리도 불편하게 아이들을 찢어놓게 되었을까. 홍사범은 "한곳에 같이 보내면 놀게 되요."라며 웃는다.

최근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좋아져서 홍도장에는 한국 유명도장의 장단점을 모두 오픈해두어 유학을 가고 싶으면 한국도장에 단기 유학을 알선해주기도 한단다. '제자를 자꾸 유출하면 (홍도장)은 수입이 떨어지잖아요?'라고 묻자, 기자는 이내 핀잔을 듣는다. "에이, 그런 생각하면 아이들 못 가르치죠. 전 그런 것 몰라요."

이윽고 하성봉이 같이 자리하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자, 동갑내기 절친이 마주 앉은 모습에 이들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는 기자는 그저 '짠 한 생각'이 먼저 든다. 술잔이 한 순배 돌아가면서 이들이 나눈 얘기를 자연스럽게 모아봤다.

▲ 하성봉(까만 티)이 아이들에게 들러싸여 사활을 풀어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홍맑은샘.

연구생신분을 벗고 아마바둑계에 등장한 시기는 어떻게 되는가. 다들 연구생을 풀로 채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홍맑은샘 16살이었을 게다. 중3 나이 때 연구생을 나왔고. 연구생 기간은 3년이나 남겨 놓았다.
하성봉 18살 때 연구생 기한을 6개월 남겨놓은 상황이다. 또 당시는 19세 까지 연장할 수도 있었으므로 1년6개월이나 남았다. 따라서 입단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전 입단대회에서 낙방하고는 상심이 컸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우승한 아마대회가 몇 개나 되는가.
홍맑은샘 일본대회를 빼면 26번이다. 일본에서 두어 번 우승했고. 거의 하사범과 전성시절이 겹치는데, 대개는 2000년도 전후해서 2005년 정도까지 일군 성과다.
하성봉 28번이다. 대략 10년 정도에 기록했지만, 일본에 건너 간 4년 동안은 대회를 참가하지 않았으니 6년 정도에 걸친 성과다. 1999년 첫 우승을 하고서 거의 아마계를 홍사범과 양분했었다. 당시 한해 상금으로 번 돈이 3000정도 되었다. 당시엔 상금도 크고 대회도 많았던 덕이다.

일본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입단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가?
홍맑은샘 2004년에 도일했다. 그보다 먼저 2001년 국수전 결승에서 하사범과 만났는데, 이긴 사람이 일본을 가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우승하면서 이듬해 세계아마선수권대회를 출전하게 된다. 지금의 아내는 일본대학 동호인이었는데 제 바둑을 기록하게 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일본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게 되었다. 입단을 목표로 간 것은 아니고, 한동안 한국에서도 입단대회에 나가지도 않았다. 어린이를 좋아해서 도장할 생각을 처음부터 하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관서기원으로 부터 입단 문호를 개방하게 됨에 따라 내가 혜택을 보게 된다.
하성봉 28살 때 일본을 가게 되었다. 홍사범처럼 확고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아마정상에는 올라봤지만 그 이후엔 자극적인 게 없었다. 또 사범일만 하다보니 조금 나태해진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입단은 아직까지도 꿈이지만, 인생을 좀 발랄하게 살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4년 동안 일본어를 마스터했고 제 인생의 폭이 넓어 졌던 기간이었다. 홍사범에 이어 윤춘호 사범이 또 입단하자 나중엔 관서기원에서 입단문을 닫아버렸다. '아, 평생 아마로 살라는 계시구나' 하고 느꼈다. 하하.

연구생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곤란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로 유명하다.
홍맑은샘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불편하다는 사실을 크면서 느꼈다. 어쩌면 그런 부분은 잘 알았기 때문에 다른 정신적인 면에서 강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서울 올라올 때는 5학년말이다. 어릴 때 생각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헝그리 정신이 투철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돈으로는 결코 터득할 수 없는 덕목이 아닌가 한다. 상대가 화점에 두면,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3,3에 들어가서 상대에게 '꼬장'을 피우기도 했다. 살아남으려고 했다. 난타전을 벌였다. 도장에서 배운 것도 쓸모없이 만들기 위해서 똑같은 길을 가면 안 되고, 난전을 획책하는 바둑이 되었다. 이른 바 '샘류'라는 게 있었다. 백을 들었을 때 고목 외목을 구사하고, 흑일 때는 외목 화점을 애용하는 교본에는 없는 샘류가 있었다.
하성봉 가난했다는 사실은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연구생 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연구생 때는 프로사범이 늘 봐주고 같은 도장에 친구들이 있는 아이들에 비해 우리는 주말에만 연구생 모임을 한다. 왠지 외톨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주중에는 도장엘 나가지 않으니 순수하게 독학을 해야 했다. 지금 같으면 타이젬이라는 실전도장이 있으니 전혀 외롭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서 홍사범과는 더욱 절친해졌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면 친할 사람이 없었다. 주중엔 둘이서 10번기도 하고 자전거로 단련도 하고 홍사범 집으로 가서 같이 공부하곤 했다.

▲ 홍맑은샘과 그의 부친인 A7 대표 홍시범 씨와 하성봉.

지금 형편 때문에 배움을 좌절해야 하는 기재가 있다면 어찌 하겠는가?
홍맑은샘 아이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형편이 안 된다면 당연히 월사금이 없어도 가르쳐 줘야 한다. 지금 일본 홍도장에도 아버지가 퇴직한 친구가 있는데 학원비를 받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우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는 거다. 따라서 충분히 대화를 하고서 공부 이외의 고민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둘 다 팽팽했던 실력인데 둘 간 승부는 어떠한가(웃음)?
홍맑은샘
곤란한 질문이다. 둘이 결승에서 만난 것이 두어 번 있는 것 같은데, 결승전은 내가 다 이겼다. 비행기타고 가는 특혜가 있는 것은 내가 다 이겼다. 그런데 정작 비행기 타고 가서는(세계아마대회) 두 번 다 우승을 놓쳤고, 하사범은 세계아마대회를 우승한 적이 있다.
하성봉 서로 이겼다 졌다했는데, 연승과 연패로 반복한 기억이 있다. 아마 바둑을 기세로 두었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국수전과 (지금은 없어진) 도원배에서 결승에서 내가 졌다. 도원배에서는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4패빅 나올 뻔한 난전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언제 시작되었고, 바둑은 어떤 스타일인가?
하성봉 서울에서 홍사범을 처음 보았다. 4학년 때 오리온배 때였는데 예선에서 떨어졌는지 대회장입구에서 울고 있더라. 하하.나의 바둑은 거친 편이었고, 22세 때부터는 부드럽게 두었다. 부드러운 바둑으로도 우승이 가능했다. 하하.
홍맑은샘 난 운 적이 없을 텐데…. 하하. 서울서 연구생 할 때 처음 봤다. 바둑은 원래 굉장히 괴초식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정석을 알면서도 안 쓰는 식이었다. 어릴 때부터 도장 아이들이 정석이나 최신 유행포석을 쓰면, 일부러 씩씩거리며 낯선 길로 가서 전투를 일삼았는데 오기가 발동해서였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다시 공부를 한다. 이론적이거나 안정적인 면도 가르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기보라면?

하성봉
'세계최고의 공격수'라던 유창혁 사범님과 프로아마대항전에서 정선에 덤이 있는 바둑이었다. 1집승을 거둔 바둑이 기억난다. 당시 2000년으로 기억하는데 유사범을 이길 자는 이창호 사범님밖에 없을 때다. 또 세계아마대회 결승에서 중국선수를 반집차로 제치고 우승한 기보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300수 이상 가는 대접전을 펼친 바둑이었다.
홍맑은샘 나도 2000년 프로아마대항전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이창호 국수님과 둔 바둑이다. 당시에 이국수님을 상대로 감히 괴초식을 선보인 끝에 5집승을 거두었다. 아버님(A7 홍시범 대표)이 그 기보를 가보처럼 보관하고 계신다.

▲ 일본에서 유학온 어린이들이 모두 맑은샘배에 출전했다. 홍사범님과 하사범님과 함께 '찰칵!'.

승부사에서 조련사로 변했다. 가르치는 노하우에 대해 팁을 준다면?
하성봉 지금도 네셔널리그에서 승부를 하고 있다. 기량은 지속적으로 갈고 닦지 않으면 멈춰버린다. 그래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어서 올해는 더욱 신경을 쓴다. 전주에 내려오니 손을 볼 게 없고 아이들이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있어 여유가 생긴다. 맘의 여유가 생기니 또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게 되는 것 같다. 스승과 제자는 역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제자도 스승을 편하게 해줘야, 스승은 없는 노하우까지 끌어낼 수 있다.
홍맑은샘 장쉬와 야마시타게이고도 홍도장의 학부모다. 가끔 프로시합을 나가지만, 최선을 다해 두려고 한다. 인터넷에 치면 기보가 나오는데, 도장 얘들이 안보는 척 하면서 다 본다. 바로 사범님이 열심히 둔다는 것을 보여주고 사범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프로 입단한 친구들이 홍도장에서 나의 기보를 가지고 연구회도 한다. 자랑스러운 기보를 남겨야 하는 이유다. 프로든 아마든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일본아이와 한국아이들을 두루 교육하다보면 차이점이 있을까?

홍맑은샘
일본은 곱상하게 두고 부족하면 어려워한다. 정신력이 약하다. 깡이 부족하다. 그러나 일본 부모는 바둑을 우리처럼 삶의 도구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저 도를 닦는 심정으로, 프로가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고, 교육의 일환으로 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성봉 확실히 일본 아이들은 바둑을 배워도 스트레스 없이 배우는 것 같다. 한 예로 한국에 데려온 한 아이는 입단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해주었음에도, 부모님은 유학까지 보내면서 바둑을 가르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늘 겸손하고 밝은 모습이며 성실하다. 항상 이불을 개고 스스로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부모가 바둑을 가르치는 이유인 듯하다

(다짜고짜)성공한 인생인가?
홍맑은샘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더 해야 하지만.
하성봉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비운의 승부사'니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고난의 길이 있었기에 지금 즐거워하는 바둑을 계속해서 전공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나에게 배우러 오게 되었다. 이 정도면 꽤 성공한 사람 아닐까.

지금도 어렵게 공부하고 있고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하성봉 느리더라도 천천히 걸어다가보면 목표가 보일 것이고, 꿈을 버리지 말고 힘들어도 갔으면 좋겠다.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간절히 바라고 염원한다면 결코 못 이룰 목표는 없다.
홍맑은샘 맞다.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 안된다면 아직 죽을 힘을 아직은 다 쓴 것이 아닐 것이다.
▲ 그날 전주에서 올라온 뒤 며칠 있다가 맑은샘배 어린이최강전 참석차 서울의 응암동 아마바둑사랑회 회관에 들른 홍맑은샘과 하성봉은 대회를 마치고 제법 많은 술잔을 부딪혔다. '봉아! 꼭 성공해라!' 응? 먼 얘기지? '내일 성봉이가 맞선을 본대요!' 뒷줄 오른쪽은 홍사범의 어버님, 좌측 두분은 이모님들. 

▲ 맑은샘배 뒷풀이에서 일본 제자들에게 노래를 찾아주고 있는 홍맑은샘과 하성봉.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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