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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IN 뉴스人
남원에 부는 바둑기부 바람
남원바둑리그 숨은 후원자 이경우 명인치과원장
2016-06-21 오후 8:51:10 입력 / 2016-12-07 오후 2:40:36 수정

▲ 한눈에 후덕하고 인상 좋은 이경우 명인치과원장. 그는 남원바둑을 위해 남원바둑리그에 10년치 기부를 약속했다고.

어제 타이젬에서는 춘향골 남원에서 벌어진 남원바둑리그를 소개했다. 인구 10만에서 한참 빠지는 남원시에서 바둑리그를 기획하고 출범했다는 것 자체도 잔잔한 뉴스지만, 토박이 바둑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남원바둑을 살리자는 취지로 바둑행사를 기획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여기까지는 사실 흔히 보던 뉴스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것이 기자를 짠하게 만들었다. 후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부를 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그들끼리 자체후원금을 모아 훌륭한 바둑리그를 반영구적으로 진행했다. 반영구적이려면 후원이 반영구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해결되었다. 훌륭한 지인들로 하여금 장기간 리그를 후원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으니 말이다.

"향후 10년은 끄떡없습니다!"
대회를 주최한 남원기원 조규홍 원장은 아무 걱정 없단다. 이유인 즉, 후원자인 남원명인치과 이경우 원장이 향후 10년간 1년에 1200만원씩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자동이체로 곧장 남원바둑협회로 쏘기로 했다고. 또한 이복기 허병회 조규홍 씨도 향후 10년간 기부를 약속했단다.

기부는 기부를 낳았다. 이에 뒤질세라, 정용오 남원바둑협회장은 300만원의 거금을 쾌척했고, 안철수 이사는 에어컨에다 책상 의자 등 집기를 몽땅 기부했다. 그 외 많은 회원들도 너도 나도 기부행렬에 동참하며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단다. 

이 조그만 마을에 웬 바둑유지가 이토록 많을까.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도 있지만, 기부는 가진 자만의 특권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특별히 나은 삶도 아니었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수많은 바둑유지가 뜻을 모은 것이다.

▲ 남원시내에서 명인치과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남원명인치과 이경우 원장님과 '힘들게' 대화를 나눴다. 이원장은 앞서 소개한대로 10년간 1년에 1200만원씩 무려 1억2000만원의 바둑기부금을 내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한달에 100만원씩 협회기금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분일까 몹시 궁금했다.

"(일을) 벌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흔히 인터뷰를 하자면 못이기는 척 하면서도 응해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원장은 오히려 동석한 조규홍 씨에게 역정을 냈다. 그는 남에게 알리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경우 원장은 올해 53세로 남원명인치과 원장님이다. '바둑과 치과' 하니까, 대구의 덕영치과병원 이재윤 원장과 인천의 김종화치과병원 김종화 원장이 생각났다. 그들은 이미 바둑가에서 십 수 년 세월동안 바둑기부에 열성이며 바둑의 미래를 논했던 바둑리더요 마니아가 아닌가. 기자는 순간, '또 치과의사?' 하고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슬쩍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명인치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명인'이란 바둑에서만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바둑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지난달 남원바둑 춘향선발대회에서 스폰서인 (주)아시아와 함께 플랜카드 하단에 '명인치과'라는 표기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명인치과였다.

"하하. 역시 날카롭네요. 맞습니다. 서봉수 사범님이 명인을 딸 때부터 명인이란 이름이 꽂혔어요. 그때 수담을 나누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죠. 산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악인이 없듯이 바둑도 그렇습니다. 평생 교훈은 부득탐승(不得貪勝)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바둑밖에 없습니다. TV를 틀면 바둑을 보고…"

▲ 맨 왼쪽 이원장이 남원바둑리그 첫날 남원바둑협회에서 조촐한 개회식 인사말씀을 하고 있다.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10년간 남원바둑을 위해 통 크게 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취미가 바둑이고 좋은 행사를 한다기에 동참했단다. 그런데 "이 분이(동석한 조규홍 씨)이 정기적으로 치과이름을 걸겠다니까 부담이 되죠. 무슨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는 비용보다도 (타이젬에) 화제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친구에게 돈을 빌린다고 할 때 1억원 한번 빌리는 것과 100만원을 100번 빌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120개월 동안 100만원을 꼬박 꼬박 낸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큰 대회를 하는데 자꾸 찾아오면 안 되잖아요. 그냥 부쳐드릴게요."하고 말았단다.

기자가 10년은 일단 건강하게 사셔야 하겠다고 농을 던지자, 이원장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현역에서 은퇴할 때가 그 즈음인 것 같습니다. 식언을 하지 않으려면 10년은 살겠지요. 하하!"

큰 재력가도 아닌 그가 벌이는 기부행위에 대해서 좋아할 부인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도 기부하는 저를 좋아합니다. 제가 춘향장학재단에서 애향장학숙(남원학생들이 서울에 유학을 가면 기거할 기숙사)에 벽돌 한 장 값을 내니까 매우 좋아하더군요. 아내는 미대를 나와서 물감 값도 못 벌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기부하기도 하고요…"
그는 바둑이 유일한 취미다. 사실 재미있는 취미들은 간혹 있었지만 특별히 오래간 취미가 없었다고 한다. 골프도 3년을 치다가 시들해졌고 스키도 좀 타다가 위험해서 관두었고. 역시 바둑밖에 없었다고 한다. 월간바둑도 수 백 권 모았다. 그럼 타이젬 대국도 당연히 할 터.

그런데 그가 불러준 타이젬ID lmw89xx를 검색해보니 뜻밖에 0승0패. "타이젬은 늘 접속하죠. 그런데 인공지능이 좋아져서 가끔 인공지능대국을 즐기고 9단 대국을 관전위주로 합니다."

동석한 조규홍 씨가 남원에서 기원을 처음 열었을 때인 90년대 초, 이원장은 자신과 한판을 겨루고는 서랍에 꼭 1만원짜리 한 장을 넣고 나간 인연이 근 30년째라고 했다. 이원장은 타이젬 4단 정도 될 거라고 한다. 대국수가 없는 것은 모르긴 해도 바쁜 일상 속에서 바둑을 즐길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개회식 직후 그도 오랜만에 바둑돌을 잡았다. 상대는 정용호 남원바둑협회장. 정회장도 기부행렬에 동참했다.

대뜸 "기부하면 즐거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인터뷰에 실을 건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답이 근사하면 실을 것이고 무미건조하면 뺄 것입니다. 기부하면 기쁜가요?"

기쁘단다. '기쁘지 않은 일을 왜 하겠는가'하며 오히려 반문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남원에서 돈을 벌었기에 남원에서 쓰길 원한다. 다른 사람들은 남원으로 출퇴근해도 그는 남원으로 오히려 이사를 갔다. 그리고 서울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기보다는 이곳에서 사려고 한다. 그래야 자신의 병원도 남원분들이 와줄 것이란다. 지극히 간단한 논리다.

내친 김에 기부에 자동이체는 왜 하는 지도 궁금했다. 직접 전달하는 게 '손맛'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부를 하고서 통장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저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을 집사람도 알아야 하죠. 항상 기부를 할 때는 의논을 합니다. 이번 달에 '이렇게 이렇게 나갔네' 하며 통장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통장에 돈이 나갔는데 뿌듯함을 느낀다니 예삿 사람은 아닌 듯 한다. 옆에 있는 조홍규 씨는 듣고 있자니 답답한 듯 이원장의 선행을 계속 밝히려고 하였다. 바둑기부 이외에도 무진장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간 밀고 당기기가 있었음을 밝힌다.

"아, 이 분은요. 장애인 단체 4개인가에 기부도 하고 있고요…." (더 이상은 밝히지 않겠다. 실제로 너무 완강하게 밝히는 것을 꺼려하셨다. 그 자리에서도 두어개는 더 그의 선행을 들을 수 있었음을 밝힌다.)

"아까 오른손이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내 얘기였죠!" 끝내 기자도 역정을 듣고 만다.

▲ 30년지기 조규홍 남원기원장과 이경우 명인치과 원장과 손을 꼭 잡고 포즈를 취했다. 뒤에 보이는 그림은 이원장의 부인이 손수 그린 명화라고.

원장은 자꾸 시계를 보면서 바둑리그 개막식에 늦겠다고 보챈다. 충분히 고마운 바둑기부자라는 사실은 확인이 되고남음이 있다. 일어서면서 부인이 그려준 명화 앞에서 조규홍 씨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자 했더니, 그 제의엔 선뜻 응한다.

대화를 주도한 적이 없었던 이원장은 마지막 한마디를 먼저 기자에게 던진다. "사실 로타리클럽 활동을 23년간 해오면서 크고 작은 기부에 익숙해 있습니다. 대구 덕영치과병원 이재윤 원장님이 로타리클럽 바둑동호회장이라는 기사를 읽고, 또 바둑에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분을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은 "욕심을 내서 가지고 있으면 불행이 될 것만 같아서 의식적으로 기부를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고 말했다. 인도 '마더 테레사의 집'의 시인 조병준은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봉사를 한 후, "봉사도 중독이다"고 말했다.

지금 이경우 원장의 잔잔한 바둑기부가 남원애기가들과 함께 했고 또 그 날개짓은 어디까지 뻗어갈 지 모른다. 참 좋은 바둑의인을 만났다.
▲ 정용호 남원바둑협회장(왼쪽)과 오랜만에 반가운
포즈를 취한 이경우 원장.

▲ 남원에서 자란 초등생유망주 서준우(전주효자초3)
와 반가운 포즈. 서군은 타이젬 8단의 고수인데, 이
경우 원장은 이러한 꿈나무를 키우는데도 남원바둑협
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원했다.

▲ 그는 바둑을 두기보다는 관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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