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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있는 나이테가 아름답다
불운의 아이콘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하성봉(34) 인터뷰
2016-05-18 오후 2:27:07 입력 / 2016-12-07 오후 2:40:12 수정
▲ 전국아마대회 28회 우승자 하성봉만큼 굴곡이 많은 아마강호도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 후학들을 길러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1.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연구생 1조 시절이었던 1997년. 입단대회 초반부터 잘나가고 있던 그는 불운하게도 반집패를 두 번이나 당하면서 또 다시 입단이 좌절된다. 반집을 낚아챈 이는 다름 아닌 최철한.

2. 연구생을 졸업한 후 아마바둑계로 진출한 그는 아마대회를 석권 또 석권했다. 무려 28개에 달하는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는 그의 화려한 아마시절을 대변한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입단대회에 출전했지만 입단문턱은 여전히 그에게는 넘지못할 벽이었다.

3. 입단할 천운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2003년 세계아마선수권대회 출전권이 부여되는 아마국수전에서 우승한 그는 당연히 출전해야 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바로 2002년 사스(SARS)로 인해 대회가 중단됨에 따라 출전하지 못했던 2002년 우승자 이강욱(현 프로)과의 최종선발전을 치러야 했고, 그 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강욱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입단에 골인.

4. 2007년 연구생입단대회가 신설되면서 지금까지 세계아마바둑선수권 우승자에게 특별입단을 시켜준 특례조항이 폐지된다. 바로 그때 그는 덜컥 세계아마선수권을 우승해버린다. 한발 늦었던 것이다. 이미 10년 동안 아마최고봉이었던 그로서는 천추의 한이었다.

5. 2008년 세계아마선수권을 우승한 이후 그의 행적이 묘연하다. 수도권에서 지도사범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아마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끊겨버렸다. 그가 30대가 되던 2011년부터 3년간의 일본생활을 거쳐, 지금까지 후학을 지도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6. 34세인 그에게 '주니어'라는 수식어는 어색하다. 그는 최근 불운의 아이콘을 벗어던지고 희망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비록 시즌 초반이지만 내셔널바둑리그에 나서서 5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바둑세계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10년 연하의 난다 긴다 하는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2016 내셔널바둑리그에 출전한 하성봉(35). 현재 그는
화성시팀으로 뛰면서 5연승을 구가하고 있다.

1억원을 호가하는 바둑판과 1백만 원짜리 바둑판은 육안으로는 쉽게 구별이 안 된다. 오랜 세월 온갖 풍상에 시달리면서 꿋꿋이 생명을 유지해온 나이테의 굴곡은 예술 그 자체다. 그러나 큰 비 한번에 10센티미터를 자라는 아마존의 이름 모를 나무는 그가 모질게 살아온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그윽함에서 한참 모자란다. 그렇듯 탄탄대로를 달린 사람보다 뭔가를 극복해본 사람의 스토리가 가슴 뭉클한 것은 바로 굴곡이 있기 때문일 것.

하성봉(35)은 젊은 나이에 나이테가 그윽한 사람이다. 입단 1순위를 수년간 유지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아마바둑계로 전향한 후 거짓말처럼 거의 전 대회를 석권하며 2000년 언저리엔 프로10걸보다도 상금 수입이 많았다.

그는 부산태생이며 10대 중반 서울로 올라와 연구생 생활을 했고, 그 후 20대엔 전국대회만 28차례를 우승하는 등 아마바둑계를 '폭풍 흡입'했다.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입단대회를 노크하는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풍운아다.

"아, 기자님 전주에서 보게 되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비밀인데 제가 전주에 있는 건…(웃음)"
"결혼소식은 아직 못 들었고, 연애는 하고 있는지?"
"지금은 연예할 시간도 없어요. 두세 번 해봤습니다만 재능이 없더라고요. 하하"

최근 하성봉은 기자 눈에 자주 띈다. 기자가 자주 대하는 사람이면 활동이 활발하다는 증거일 테다. 그는 아마바둑계에서 '종적'을 감춘 후 각 도장에서 사범을 하면서 십 수 년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최근 전주로 내려왔다는 풍문을 들었기에, 이 참에 이런 저런 그간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 최근 전주로 내려가 지역엘리트들에게 자신의 바둑철학을 전수하고 있는 하성봉(파란 트레이닝복).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고 내셔널리그 5연승인데, 너무 잘하는 것 아닌가요(웃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매판 정성을 다해서 두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한 성적 같아요. 아마 앞으로 이길 판을 당겨서 미리 이긴 것이겠죠. 하하. 더 이상 많은 기대는 하지 마세요.

서울서도 많은 도장이 있는데 왜 이곳까지 내려왔나요. 전주가 궁합이 맞았나요?
"요즘은 지방 연구생들도 사범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엘리트코스를 밟는 아이들은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오는데, 제 조언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겠지요. 애당초 이곳에서 하루 정도 얘들과 같이 지내봤는데, 이미 체계가 잘 잡힌 아이들 같아서 같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승과 제자가 잘 만나는 것도 서로에게 복입니다."

프로가 되려다가 프로를 만드는 역할로 변모한지 10년쯤? 이젠 레슨프로가 다 되었겠어요.
제가 연구생을 나와서 입단준비를 계속하던 10대 후반에는 평일이 되면 마땅히 할 일이 없었어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아서 사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처음엔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는데, 장수영도장 양천대일도장 그리고 일본홍도장 수원도장까지 쉼 없이 사범 일을 하다 보니 13년이나 흘렀습니다. 저도 심기일전할 겸 해서 낯선 곳 전주에 터를 잡고 바둑영재들을 돌보고자 결심했습니다.

이젠 지도방식에도 노하우가 많이 쌓였겠고 월급도 셀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운 좋게도 사범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마사범 톱클래스 대우를 받았어요. 노하우라면 아이들을 가려서 받는 것이랄 수 있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제가 진짜 가르치고 싶은 것을 못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할 자세가 갖춰진 영재들을 만나면 저도 몹시 기쁩니다. 단순하게 수를 가르쳐주는 것은 사범역할이 아니고, 그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2011년 일본 제18기 아함동산배 전일본속기오픈전 본선에서 일본 프로강호들을 척척 꺾고 8강까지 진격한 바 있는 하성봉.  

우승 트로피와 상장도 다 보유하고 있나요? 상금은?
트로피는 우승 준우승 할 것 없이 다 있습니다. 하나도 안 버렸어요. 부모님이 최근 지방으로 내려가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살아야 하는데, 트로피를 진열해 둘 방이 하나 더 필요해서 안 그래도 걱정입니다. 그 동안 모은 상금은 일찌감치 부모님에게 다 드렸죠. 최근엔 상금을 못 타니 불효를 하고 있는 셈이네요.

그럼 부모님도 내려가시면, 결혼할 절호의 기회인데요(웃음).
여자 기사들도 주변엔 많이 있었고 기회는 더러 있었는데 아직 인연을 못 만났어요. 사범 하는 친구들은 오후부터 밤10시 언저리까지 수업을 하다 보니, 대체로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해봐요. 저 같은 경우는 30세 전후로 또 일본을 갔다 오고 난 후 더더욱 시간이 없었죠. 뭐, 결혼할 준비는 되어있는데 대상이 아직….

13년간 사범을 했다면 거쳐 간 프로들도 꽤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손을 거친 아이들은 50명 정도가 프로가 되었고요. 일본 홍맑은샘도장에서도 사범을 했으니 10여명 정도가 있죠. 지금 홍도장출신의 이치리키료 후지사와리나 같은 일류들도 제게 사사했죠. 이치리키료 후지사와리나 같은 경우는 지금도 연수차 한국으로 종종 오는데 자주 만나곤 합니다.

입단에 실패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많이 아쉬운가요?
글쎄요. 남들은 여전히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생각이 조금 변했어요. 제가 열심히 살았던 만큼 후회는 없어요. 승부란 것이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인 것이고, 조금 아쉬우면 조금 이득 본 사람도 있고 그런 것이죠.
연구생시절엔 도장을 다닐 형편이 안 되니까, 평일엔 자전거를 타고 북한산 계곡에 다녀오기도 하고, 일반기원에서 열심히 스파링을 하기도 했죠. 그 당시는 도장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보다 정신력에서 강했고, 그것이 또 연구생 시절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포석이나 초반은 도장아이들이 강했지만 중반 이후는 제가 강했어요. 타이젬이 그때 있었으면 저도 입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제가 지방 영재를 일부러 찾아온 이유도 그러한 정신력을 물려주고 싶어서입니다.

▲ '사범' 하성봉은 어린 기재들에게 자신의 특장점이었던 정신력을 가장 강조한다고.

아직 입단의 꿈은 가지고 있나요?
시대가 맞지 않죠. 일본에서 돌아올 때 만 해도 입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가 30줄에 접어들면서 바둑이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그들에게 제 신분을 말하기가 뭣했어요. '바둑선수입니다' 하면 '그럼 프로시겠네요?' 하는 대답이 십중팔구 돌아와요. 그러면 왠지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아, 나도 프로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하고 절실하게 입단을 생각하죠. 올해도 입단대회에 나갔어요(웃음). 지금은 입단할 실력도 안 되지만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과 두게 되는 게 좀 멋쩍긴 합니다.

바둑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가르침을 준다면?
너무 평범한 얘기지만, 매판 전력을 다해서 바둑을 둔다는 자세만 가진다면 실력은 꾸준히 발전할 거예요.

바둑계에 하고 싶은 애기가 있다면?
요즘은 바둑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분들의 직업군은 넓어졌지만, 연구생을 하다가 입단이 안 된 인재들이 찾을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이제는 한국기원이나 대바협에서 외국어 교습이나 바둑보급의 루트 등을 설명해주는 아카데미 같은 것을 고려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바둑의 고급인력들이 막상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은 바둑계로서는 인력 낭비이니까요. 저도 기회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그러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바둑 인생은 실패 또는 성공?
성공했죠. 아직 결혼을 못한 것이 걸리긴 하지만(웃음). 바둑 한 길만 걸어가면서 많은 분이 기억해주면서 어떤 존재감이 생겼어요. 또 현재는 영재들을 가르치는 것만 해도 엔돌핀이 마구 생겨나는 일이니까 바둑하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이전에 놓인 돌을 무를 수는 없는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형세판단 잘 하여 두어가면 되죠. 바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 희망의 아이콘 하성봉!

너무 많은 굴곡으로 점철된 인생은 회고하는데 힘이 들고, 그의 나이보다 굴곡이 덜 한 사람의 인생은 흥미롭지 않은 법이다. 하성봉의 굴곡이 어린 기재들의 앞날에 보탬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하성봉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승부에서 이기는 것은 선(善)이다. 승부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같은 승부사에겐 자비이며 사랑이며 존중이다. 전문적으로 바둑을 가르친다는 것은, 첫째 공부한 시간이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둘째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요, 셋째 승부사의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요, 넷째 바둑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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