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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둑인' 이붕선생 돌아오다!
이붕장학회로 내셔널리그에 참가하는 고 김영성 선생의 아들 김한상 씨
2016-04-27 오후 6:27:10 입력 / 2016-12-07 오후 2:40:54 수정
▲ '이붕' 김영성 선생의 아들 김한상(31) 씨가 이붕배 대신 내셔널바둑리그 부산이붕장학회 팀을 이끌고 바둑계로 돌아왔다.

혹시 이붕 선생을 기억하시는가. 우리 바둑인들에게는 '이붕배'가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한국기원 최장수 이사였고 초대 부산바둑협회장을 역임한 고 김영성 선생의 아호를 딴 어린이 바둑대회 이붕배. 여름방학이면 부산 송정해수욕장 인근 청소년수련관에서 전국에서 몰려든 어린이기객들과 학부모가 한데 모여 여름휴가를 겸한 바둑축제를 벌이곤 했었다.

대만 잉창치와의 인연으로 응씨배가 생겨났던 1988년 이붕배도 나란히 태동했다. 이후 목진석 김만수 홍맑은샘 최철한 김지석 등 내로라하는 한국바둑의 거목들은 어김없이 이붕배 어린이대회를 통해 쑥쑥 자라났다. 바둑계의 은인 김영성 선생을 혹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남긴 이붕배만큼은 여전히 바둑 팬들 가슴속에 남았으리라.

이붕 선생은 1976년 부산에서 ㈜삼원섬유를 창업해 중견 기업으로 키운 후 한국 바둑계의 큰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2004년 65세의 일기로 타계한 김영성 선생의 아들인 김한상(31) 삼원섬유 실장이 내셔널리그 부산 이붕장학회를 이끌고 다시 바둑계로 돌아왔다.

▲ 내셔널리그 부산이붕장학회 김한상 단장.

"아버님이 남기신 바둑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이제 제가 '이붕장학회'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를 받들려고 합니다. 부산의 많은 바둑인들이 아버님을 아직도 추억하시는 것도 바둑계로 돌아온 큰 이유입니다."

MICE산업과 IT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선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에서 '이붕주니어'를 만났다. 마침 이번 주말에 있을 내셔널바둑리그 개막을 앞두고 부산이붕장학회 소속 선수단의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20여 년 전 한국기원에 근무했을 적부터 동향의 이붕 선생과 인연이 각별했던 기자도 반가운 맘에 당장 날아가서 합석했다.

그는 인사를 마치고 착석하자마자 '이때다' 싶었던 지 30년은 족히 지난 자동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한 움큼 꺼낸다. 그리고는 '혹시 이 분 아십니까?'하고 기자에게 대뜸 들이밀더니 사진 속에 담긴 과거에 대해 아는 데까지 알려달란다.

때마침 서봉수의 응씨배 우승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 사진은 기자가 1993년 초년병 시절 싱가폴에서 찍은 것이었다. 반가운 맘에 한 두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우칭위엔 잉창치 오다케히데오 등 바둑계의 전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훈현 부부, 서봉수 부부, 린하이펑, 루이나이웨이, 네웨이핑, 조치훈 등도 사진속에서 이붕 선생과 함께 웃고 있었다. 

▲ 이붕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바둑후원에 진력을 다하겠다고.

이붕장학회가 근 10년 만에 다시 바둑계로 컴백했습니다. '연어의 귀향'이라고 봐도 되겠는지요?
최근 아버님과 바둑에 대한 인연을 정돈하는 중입니다. 온갖 그림이라든지 부채 족자 바둑판 사진 등 매우 많더군요. 이 유품들을 보면서 아버님이 생전에 늘 이붕장학회의 이름으로 바둑후원을 하셨던 기억이 새롭고, 이 참에 끊어진 아버님과 바둑의 연을 다시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저희 (주)삼원섬유가 사회사업이나 장학사업이 전무한데, 인연이 각별한 바둑에다 사회사업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어머님도 흔쾌히 좋아하셨지요.

(주)삼원섬유에 대해 잠시 소개 바랍니다.
1976년 부산에서 아버님이 창업한 기업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다시 회사를 이어받고 있는데, 수출이 4할이며 내수가 6할입니다. 과거엔 원단 염색 등 섬유계통 영역을 두루 했었는데 지금은 원사 쪽 일만 집중적으로 합니다. 중소기업은 오너가 돌아가시면 타격을 많이 받는데, 저희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간 바둑소식은 거의 못 들었을 줄 압니다. 어떻게 파악하시고 계신가요?
과거 아버님은 어린이대회나 장학사업 등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후원을 하셨는데, 오히려 지금 이런 사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당시에 장학금을 받은 어린이들이 한국바둑의 주축으로 성장했을 겁니다. 처음 이붕배가 없어지고 난 후 한화생명배처럼 대기업에서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저도 회사를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렇게 되면 바둑후원을 더 하고 싶어요.

이번 이붕장학회가 다시 돌아오면서 부산 뿐 아니라, 전 바둑계가 환영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과거 이붕배같은 '작은 대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님의 바둑열정은 남다르셨지만, 저는 손이 많이 가는 대회보다는 일단 내셔널리그부터 출발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아버님의 유지를 받는 작은 시작이 바로 내셔널리그입니다. 아버님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만, 팀 하나 만들 정도의 후원은 할 수 있습니다. 아버님이 사랑했던 바둑, 그리고 저도 사랑하는 바둑이니까요.

▲ 부산이붕장학회 팀원들과 해운대 달맞이공원에서 포즈를 취했다. 맨 왼쪽부터 김한상 단장, 온승훈, 이일수 감독, 이주형, 박한솔, 권순종 주무, 최환영, 서문형원. 하형수.

아, 바둑을 두십니까?
전 타이젬 소식은 다 봅니다. 그리고 기력은 타이젬 1급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정도죠. 어린 시절 부산 푸른바둑교실에서 바둑을 조금 배웠습니다. 프로들이 집을 방문하면 아버님은 꼭 지도대국을 갖게 해주었죠. 초등5학년 들어가면서 바둑에 푹 빠지게 되니까, 그 이후 아버님은 바둑 두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지요. 공부해야 하니까요(웃음).

그럼 아버님과 바둑에 얽힌 추억이 있을까요?
제가 가장 기뻤던 기억과 바둑이 관계있어요. 아버님은 경상도 사람의 전형처럼 무뚝뚝하셨기 때문에 칭찬에 인색하셨어요. 한번은 아버님과 대국 중에 제가 변에서 중앙으로 한 칸을 뛰는 매우 평범한 수를 두었는데, 아버님께서는 정말 잘 두었다고 칭찬을 하시더군요. 아버님이 다시 한 칸을 뛰었는데, 또 제가 한 칸을 뛰자, 이번에는 더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극진한 칭찬을 해주었어요. 당시 제 기력이 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렇게도 기뻤던 모양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아버님이 사랑한 바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머님은 제가 어렸을 때 같이 바둑을 조금 배우셨어요. 저랑 같이 두다가 제가 이기고 난 다음부터는 흥미를 잃으셨지만(웃음). 저도 아이가 태어나면 아들이든 딸이든 꼭 바둑을 가르칠 것입니다. 지금 아내에게도 바둑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쉽게 흥미를 갖지 못하더군요. 어쩌면 바둑도 조기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겠더라고요, 어릴 때 바둑에 재미를 붙여놓은 사람은 저처럼 커서 결국 바둑으로 돌아오더군요.

혹시 사업을 하면서도 바둑이 도움이 되던가요?
반드시 도움이 되죠. 진지하게 바둑을 대하는 사람은 예의를 배우고 통찰력을 배우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죠. 어쩌면 사업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둑입니다. 최근 알파고 열풍, 응팔, 미생, 신의 한수 등등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정서가 추억 속에서만 머물게 아니라, 이제 어떻게 새로운 길을 찾아갈지 기대가 됩니다.

▲ 김단장은 섬유에 관한한 전문가인지라, 선수단복을 맞추는 양복점까지 따라갈 정도로 열성이다.

이제는 이번 주말에 내셔널리그가 개막합니다. 부산이붕장학회 단장님으로서 임전 소감 부탁합니다.
기쁜 맘을 즐기고 후원할 수 있는 단장이 될 겁니다. 성적도 물론이지만 우리 선수단들 인연만큼은 몇 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러한 명문구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전 경기를 관전할 예정입니다. 제가 주니어선수들과 연배가 비슷한 것이 장점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 첫 만남이 기분 좋게 되니까 잘 풀릴 것으로 봅니다(웃음).

구체적인 목표는?
욕심은 우승이죠(웃음). 그러나 선수들이 스트레스받길 원하진 않습니다.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처음 시작했고 어버님과의 인연으로 바둑계에 들어온 사람이니 만큼, 바둑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계속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고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의 후원 지원을 하겠다는 대목에서 이붕선생과 흡사한 느낌이 납니다. 끝으로 '주니어'로서 돌이켜보면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아버님은 사업에 바쁜 와중에도 저와 여행도 자주 다녔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셨죠. 바둑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가정으로 들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바둑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고 광고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사랑했던 분입니다. 저는 아버님의 인품을 제일 존경합니다.

▲ 반가운 얼굴들이 만났다. 김한상 단장과 이붕선생과 함께 이붕배를 주관해왔던 이기섭 프로, 그리고 이붕배가 배출한 부산출신 최철한.

이붕(李鵬) 김영성 선생은
1974년 기사파동 때 조남철 선생을 도와서 오늘날 바둑계가 탄탄하게 성장하는 주춧돌을 쌓았다. 그 인연으로 조남철 선생에 이어 한국기원 이사 2호로 30여 년 동안 재직했다.

1988년 이붕배 어린이바둑대회를 개최해 2003년까지 이어오면서, 목진석 최철한 김지석 김만수 홍맑은샘 등 많은 기재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또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부산 베이징 오사카 타이페이 4도시 소년소녀대항전을 개최했다. 특히 2003년 도쿄대회에서는 꿈에 그리던 평양대표들이 차기 대회 참가를 결정하며 대회를 참관하기도 했다. 따라서 5개도시 대항전을 펼칠 꿈에 부풀었던 이붕선생은 이듬해인 2004년 안타깝게도 65세의 짧은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이붕선생은 양모를 수입해 극세사로 만드는 방적회사 (주)삼원섬유의 대표였다. 늘 부산을 방문한 바둑인들에게는 융숭한 대접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귀가 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정도로 검소했다. 

▲ 그리운 이붕배 시상식 모습. 이 어린이 중에도 분명 프로가 있다. 뒷줄에 김종준 장명한 김준영 프로와 오른쪽 끝에서부터 우쑹썽(작고) 이기섭 프로 김영성 선생이 보인다.

▲ 1992년 '살아있는 기성' 우칭위엔 선생을 제주로 초청했을 당시의 모습. 사진 왼쪽부터 박영수 전 제주지원장, 이붕 선생, 윤기현 전 프로, 우칭위엔 선생과 그의 제자 린하이펑.

▲ 조훈현 김영성 네웨이핑이 1988년 응씨배 결승에 앞서 기념촬영.

▲ 조훈현과 조치훈은 김영성 선생에게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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