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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리그
수면위로 뜬 한국용병 몸값 논쟁
여전히 한국용병 몸값 거품론 제기
2015-02-19 오전 11:26:33 입력 / 2015-02-19 오후 12:18:25 수정
▲ 2014년 중국갑조리그 경기 모습.


2001년 중국위기협회가 국가체육총국으로부터 '해외기사 중국갑조리그 출전 관련규정'에 대해서 비준을 받으면서 한국의 대규모 용병이 갑조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1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용병은 갑조리그의 우승이나 갑조리그 잔류를 위한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한국용병이 갑조리그에서 벌어간 상금액수는 무려 1000만 위안(약 17억6000만원)을 넘어섰다.

외국용병들이 승리수당이 10만 위안(약 1800만원)을 넘어가고 심지어 패해도 2만 위안(약 350만원)이 입금되고 있는 지금 한국용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관련규정은 당시 5단이었던 한국의 목진석이 갑조리그 충칭에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보고서가 시발점이 되었다. 2000년 12월 20일, 목진석은 충칭에 갑조리그 참가를 제의했고, 이에 충칭기원 원장과 양이 감독은 중국기원에 보고, 허가를 신청을 했다.

갑조리그는 1999년 탄생했다. 본래는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어려웠던 전국바둑단체전의 돌파구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중국바둑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중국기원도 승부수를 던진다는 마음으로 중국갑조리그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의외로 오늘과 같이 전혀 뜻밖의 흥행을 이루었다.

▲ 목진석

목진석이 갑조리그에 출전하겠다는 생각은 그가 당시 충칭의 팀원 류징과 개인적으로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그가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고 심지어 광동어 대중가요도 부르기도 했다. 그는 단독으로 중국의 각 도시를 돌아다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 그가 양이 감독에게 충칭을 대표해서 갑조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잘 임용하기로 소문난 양이 감독도 이에 대해서 간절히 바랬다. 당시의 목진석은 20세로 이창호와 함께 한국의 대표기사였다. 1994년 제1회 한중대항전에서 그는 네웨이핑을 이기면서 유명해졌으며, 연휴에 그는 LG배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기원은 충칭기원의 보고를 받은 후 즉시 '해외기사 중국갑조리그 출전 관련규정'을 초안했고, 국가체육총국에 비준을 신청했다. 이후 '해외기사'라는 단어는 온통 한국기사들이 차지하게 됐다. 이런 규정이 나온 후 14년의 시간 동안 대규모의 용병이 중국갑조리그 시장에 유입됐는데, 한국 일본 초일류기사는 거의 갑조리그에서 돈을 챙겨간 경험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갑조리그의 참가여부가 일류기사 여부를 판단하는 저울이 었고, 갑조리그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대회가 되었다.

목진석이 갑조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외국용병이 갑조리그에 들어올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는 2001년 11승7패, 2002년은 13승3패, 2003년은 12승1패의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2004년 목진석이 충칭을 떠나 1년간 휴식을 할 때 충칭은 갑조리그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 목진석이 떠나면서 얻은 우승이라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실 목진석이 갑조리그에 참가한 것은 결코 돈 때문이 아니었다. 후에 이세돌 등 한국의 용병기사들이 한판 이길 때마다 10만위안에 달하는 대가를 받아갔는데, 이는 이미 목진석이 받던 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목진석은 중국이 좋고 중국 친구들이 좋아서 갑조리그에 출전했으며, 보수도 충칭의 다른 팀원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 조훈현 조치훈

2001년 2월말, 중국위기협회가 '해외기사 중국갑조리그 출전 관련규정'을 내놓은 뒤 갑조리그 개막 2개월을 앞두고 상하이 윈난 푸젠 꾸이저우 등이 각각 루이나이웨이 유창혁 김영환 박승철 등의 용병을 영입했다. 그 해 총 5명의 용병이 갑조리그에 출전했다.

갑조리그에서 외국기사에게 시장을 개방한 후 그 해 을조리그 역시 더 이상 꼭 문을 걸어잠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2011년 지난에서 벌어진 을조리그에서 서봉수 김승준 김영삼 등이 처음으로 출전했으며, 이때부터 외국용병은 을조리그의 단골손님이 되어 한일 초일류 기사인 조훈현 조치훈 이창호 이세돌 등의 기사들이 을조리그에 참가했다.

2002년 갑조리그 시장을 개방한 후 저장은 이창호를 초청하여 매 대국에 1만달러를 지급했는데 이는 외국기사들에 대한 대우의 기준이 됐다. 이후 오래지 않아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 역시 선전과 계약을 맺었는데 역시 한 판에 1만달러의 대우를 받았다.

중국기원은 한국 일본 초일류 기사가 갑조리그에 출전하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하지만 조훈현 이창호와 같은 기사가 갑조리그에 지나치게 많아지면 각 팀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특별초청 관련규정'을 내놓았다. 즉, 세계대회 선수권자는 특별초청으로 하여 특별초청기사는 갑조리그에서 4국 이상 두지 못하게 했다. 특별초청기사는 공식 팀원으로 계산하지 않지만 출전횟수의 제한을 받는다.

▲ 이창호

2002년 저장은 이창호를 초청하고 또 일본 고노린과도 계약을 맺었다. 그 해 조훈현과 일본 린하이펑도 각각 특별초청기사 신분으로 선전 꾸이저우에 합류했으며, 2003년 일본 왕리청이 베이징하이뎬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겨우 2년 만에 '특별초청기사제도'는 갑조리그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사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특별초청기사가 한 시즌에 4판을 두는 것은 실질적으로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상징적 의의는 크다. 총 22라운드의 긴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팀에게 있어서 그들의 성적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별초청기사가 전승을 거두든 전패를 하든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특별초청기사는 처음에 적응하지 못하여 이창호와 린하이펑은 모두 2승2패를 기록했고, 조훈현은 3승1패를 거두었다.

특별초청기사의 대우는 이기든 지든 한 판을 두는데 1만달러(약 1100만원)였다. 당시 갑조리그는 막 출발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전체적인 후원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호부동산회사가 2002년 저장과 계약을 할 때 매년 90만 위안을 후원하기로 했던 상황이다.

이창호에 대한 대우는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역시 아주 높은 금액이다. 그런 이유로 최초의 반향효과를 얻고 나서 갑조리그 각 팀은 약속이라도 하듯이 특별초청기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특별초청기사는 특별한 존재이다. 갑조리그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꾸이저우 등 재력있는 기업이 갑조리그에 들어오면서 외국용병은 공식적으로 1만달러시대를 열었으며, 쓸데없이 특별초청기사라는 호칭도 붙일 필요가 없어졌다.

▲ 이세돌

2003년 한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청풍8자'가 주축이 된 꾸이저우는 을조리그 1위로 갑조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이 팀은 이세돌을 영입하였는데 당시 이세돌은 8국에 50만위안(8800만원) 정도의 대우를 제시했고, 꾸이저우는 즉시 동의했다.

8국에 50만 위안. 이 소식이 공포되면서 인터넷에서는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한국 국내 최고 우승상금 기전인 KT배와 LG정유배 상금이 5000만 원(약 35만위안)이었으니 이세돌이 중국에서 8판을 두고 50만 위안(약 8800만원)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 과한 대우라는 것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해 이세돌은 첫 출전에서 2연패로 시작하면서 곤욕을 치렀으며, 최종 7국을 두어 3승4패를 거두었다. 2005년 다시 5국을 두어 4승1패를 거두었는데 그 해 이세돌은 더 적극적이도 독특한 결정은 내놓았다. 2006년부터 그는 꾸이저우를 대표해서 최소 10국을 둘 것이며, 한 판을 이길 때 11만달러(약 1200만원)를 가져가고 패하면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갑조리그에서 이정표의 의미를 갖게 되어 이후 다른 갑조리그 팀에서 한국용병을 영입할 때 이런 방식을 따르게 됐다. 외국 용병의 가치라는 각도에서 볼 때 이런 방식도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세돌이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이기려고 왔다. 만약 패한다면 꾸이저우팀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보수를 가져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여기에 와서 먹고자고 왕복비용도 모두 꾸이저우가 책임지는데 패하면 아무런 보답이 없으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닌가."라는 논리이다.

▲ 갑조리그에서 광시의 이세돌이 청두의 당이페이와 겨루는 모습

이세돌 이세돌은 승부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2004년 처음 갑조리그에 출전했을 때 순조롭지 않았는데 꾸이저우 홈에서 구리에게 패할 때 현장에서 눈물을 떨구었는데 눈물이 바둑판에 떨어뜨린 장면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세돌은 이때부터 갑조리그에서 폭풍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으며, 꾸이저우의 핵심 병기가 되었고, 최전성기에는 갑조리그 주장전에서 19연승을 기록하는 엄청난 전적을 기록했다.

2005년 이세돌은 2006년부터 갑조리그에서 더 이상 승패에 관계없이 대가가 보장되는 시합에 참가하지 않고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이길 경우 11만달러, 패할 경우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렇게 극단적인 계산방식은 그의 퇴로를 남겨두지 않는 개성에 근거한 것이다. 8년 후 이세돌-구리 10번기에서에서 그는 이기는 사람이 500만 위안(약 8억8000만원), 패하는 사람은 한 푼도 없는 방식을 제안했고, 결국 그가 승자가 됐다.

이세돌의 뒤를 이어 최철한 조한승 김지석 박정환 등 한국의 일류기사들은 갑조리그팀과 계약을 할 때 이세돌 방식을 따랐다. 즉, 이기면 큰 돈을 받게 되고, 패하면 한 푼도 없는 방식이다. 그들의 대우 규모는 이세돌보다는 적지만 매 대국 5만위안~7만위안(약 880만원~1230만원) 가량을 받았으며, 박정환은 한국의 일인자가 된 후 이세돌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오늘에 이르러 외국용병에 대한 이세돌방식의 대우는 한국기사들에게 거대한 수입을 가져다 줌과 동시에 팀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가져왔다. 꾸이저우는 2005년~2008년 사이에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네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역시 이세돌의 공로가 가장 컸다. 2013년~2014년, 이세돌은 광시팀에 들어가 팀이 갑조리그 잔류에 공헌했다.

이세돌과 동문인 최철한은 갑조리그에서 약체로 평가받고 있는 시안에서 2009년~2013년 5년 동안 2009년 9승3패(팀은 6위), 2010년 7승2패(팀은 5위), 2011년 10승6패, 2012년 10승4패(팀은 6위), 2013년 15승3패(팀은 6위)로 팀의 갑조리그 잔류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의 승리는 90% 이상 주장전에서 거둔 승리로 갑조리그에서 주장전 승리의 가치는 다른 대국 두 판의 승리에 해당할 정도이다.

2014년 최철한은 다소 주춤하면서 7승7패를 기록했고, 시안은 을조로 떨어졌고, 그의 시안에서의 6년은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의 '90후' 중 최강자인 박정환은 처음 2012년 다롄에서 활동하며 10승5패를 기록했다. 2013년 13승4패, 2014년 11승2패로 총 34승11패로 승률 76%를 기록했다. 2014년 다롄은 4경기 앞당겨 우승을 확정지었으니 박정환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박정환의 가치를 확인한 항저우는 2014년 갑조리그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설득시켜 새로운 2015시즌에 함께하기로 했다.

김지석은 2012년부터 저장에서 뛰었다. 그해 10전전승을 거두어 저장은 갑조리그 3위에 올랐다. 2013, 2014년 김지석은 똑같이 8승5패를 기록했고 팀은 각각 4위, 10위를 차지했다. 설사 초반에는 팀을 3위까지 끌어올렸으나 최종적으로는 팀의 갑조리그 잔류까지 위험했던 상황까지 맞았다.

▲ 이세돌과 박정환은 중국리그에서 특급 대우를 받고 있다. 

조한승은 2011년 처음 갑조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랴오닝을 대표해서 출전했는데 새로 온 기사가 처음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선례와는 달리 첫 해 13승4패를 기록했고, 랴오닝은 충칭 꾸이저우 산동 등의 강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대이변을 낳았다.

2012년 한국랭킹 10위 이내의 기사들은 예외없이 모두 갑조리그 혹은 을조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을조리그에서는 8개 팀이 한국기사를 데려와 제1장에 배치하면서 을조리그가 한국고수 랭킹전으로 변해버렸다.

매년 20여명의 기사들이 프로무대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종 일류기사로 남는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95후' 기사들이 이미 최전성기에 들어갔으며, 재능이 뛰어난 기사는 판팅위 미위팅 커제 양딩신 등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은 입단하기 전에 이미 클럽과 계약을 맺어 소년시절부터 이미 자유가 없는 신세가 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갑조리그만이 진정 프로라는 농을 던진다.

매년 한국 용병기사가 1000만 위안 이상을 벌어가면 이는 갑조리그와 을조리그 총액의 5분의 1이나 된다. 갑조리그 대표 간판기사인 충칭 구리와 베이징 천야오예는 갑조리그에서 매 대국 승리할 경우 1만5000위안(약 265만원) 정도의 수당을 가져가지만 이들과 실력이나 영향력이 비슷한 이세돌 박정환은 매 대국 10만위안(약 1760만원) 이상의 수당을 가져간다. 똑같은 공들이고 다른 보수를 가져가는 것은 갑조리그 내부의 기사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활동하는 두 용병 위즈잉과 헤이자자.

이런 불합리한 대우는 여자갑조리그 시장이 개방에도 영향을 미쳐 여자갑조리그가 창립될 때 외국용병에 대한 시장개방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기도 했다. 만약 개방한다면 또 갑조리그와 같이 한국여자용병에게 고액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다. 여자갑조리그는 다소 특수성이 있다. 외국용병을 할 수 있는 여자기사는 몇몇에 불과하고 인원제한 등도 있고 또한 용병에 대한 대가도 국내멤버보다 훨씬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5년, 한국여자리그가 창설되고 루이나이웨이 헤이자자 위즈잉 왕천싱 등의 중국여자기사들이 용병으로 출전하면서 흥행을 이끌었으며, 중국에서의 영향력은 한국바둑리그보다 훨씬 더 컸다. 대부분의 중국바둑팬들은 2014한국바둑리그에 누가 소속되어 있는 지 조차 알지 못하지만 위즈잉과 왕천싱이 어느 팀에 소속되어 있는 지는 알고 있다.

한국용병들의 몸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후에 결국 패하더라도 2만 위안(약 352만원) 을 주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중국기사들의 성적이 한국기사들의 성적을 넘어선 상황에서 여전히 이런 고가의 몸값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후이는 2012년 첫 갑조리그에서 용병을 찾지 못해 부득이 군복무 중인 원성진을 영입하였으며, 원성진은 5만위안의 승리 수당을 제시했으며, 또 지더라도 1만위안의 출장비를 요구하지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던 갑조리그 신입생 안후이는 이 조건을 수락했다. 2013년 갑조리그로 올라온 광저우도 안후이와 동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랭킹 10위 이내의 기사 중에 어떤 팀과도 계약을 맺지 않은 박영훈과 접촉을 했는데 그는 이길 경우 5만위안, 패할 경우 2만위안의 조건을 제시했고, 광저우는 이를 받아 들였다.

안후이와 광저우은 그 해 각각 을조리그로 퇴출되었고 두 명의 한국용병은 선견지명(?)이 있어서 원성진은 2012년 5승10패의 부진에도 35만위안(약 6200만원)을 가져갔으며, 박영훈은 2013년 9승7패의 성적을 거두고 59만위안(약 1억3800만원)을 가져갔다.

지금 그들이 부진한 성적에도 그렇게 많은 대가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실 용병의 입장에서 패할 경우 한 푼도 안 가져가는 방식은 팀과 함께 공멸하는 방식이지만 팀에게는 약간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각 팀의 입장에서 보면 용병기사가 패하면 완전히 가치가 없게 되어 유일하게 이기는 것만이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조훈현 이창호 사제가 갑조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효과를 보여주던 시대가 아니다. 갑조리그는 이성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고 외국 용병에 대한 수요 역시 이성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광저우는 을조리그로 떨어진 후 당시 한국 5위인 박영훈은 오히려 간택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지만 랭킹13위인 조한승은 갑조리그 을조리그와 협의를 계속했고, 2014년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을조리그의 한 팀은 그와 즉시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각자의 갑조리그에 참가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 김지석 박정환 최철한 박영훈

한국 용병기사가 져도 2만 위안의 수당을 챙겨간 것은 창하오 구리 천야오예 등 중국 최정상급 기사들이 갑조리그에서 이겼을 때 가져가는 금액보다 훨씬 많다. 이런 현상을 깨뜨리려면 갑조리그에서 트레이드제도가 이미 고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움직이기 힘든 현실상황에서 갑조리그의 출전선수를 늘여 주장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단기적인 방안일 것이다.

당초 갑조리그에서 주장제도를 실시한 것은 선수들을 단련시키고 나아가서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에 이르러 중국바둑의 인재는 넘쳐나고 90후, 95후 신인들을 배출하면서 주장제도는 이미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렸으며, 한국용병의 역할 또한 크게 감소되어 주장제도를 폐지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매 라운드에서 승패를 가려 흥행력을 높이기 위해서 현재 4대4로 벌였던 대국을 5대5로 늘리는 것이 적당하다. 이는 이미 상당한 인원을 배출한 90후, 95후에게 출전기회를 더 제공할 것이다.

주장의 가치가 적어야 한국 용병기사에 대한 몸값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한국의 실력있는 기사와 중국내 90후 세대, 95후 세대 고수들과는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주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게 됐으며, 그 가치는 팀원들에게 분담되면 한국용병의 기이한 몸값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위 기사는 중국 체단주보(體壇周報) 씨에루이 기자가 쓴 내용을 번역한 것임.
TYGEM / 김경동(金敬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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