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과 커제가 이번엔 결승5번기에서 격돌한다.
2015년 연말과 2016년 연초를 뜨겁게 달굴 최고의 매치, 세계바둑 팬들이 목 빠지게 기다려온 건곤일척의 승부가 오는 30일 중국 장쑤성 루가오시에서 막을 올린다.
제2회 몽백합배 결승5번기가 2015년 12월30일부터 2016년 1월5일까지 7일간 한국2위 이세돌vs중국1위 커제 대결로 벌어진다.
결승5번기로 치러지는 세계대회는 1~2국이 끝난 후 잠시 휴식을 갖고 이후 3~5국을 속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몽백합배처럼 한 장소에서 5판을 내리 겨뤄 끝장 승부를 보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씨카드배 이후 두 번째 시도.
이세돌은 커제에게 2015년에만 3판 대결해 모두 패했다. 지난 11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삼성화재글로벌캠퍼스에서 벌어진 2015 삼성화재배 4강전 3번기에서 커제와 첫 대결을 펼친 이세돌은 0-2로 완봉패를 당했다. 스코어뿐만 아니라 대국 내용에서도 이렇다 할 기회 한 번 잡지 못한 완패였다.
지난 18일에는 중국 광저우에서 벌어진 금용성배 세계바둑단체전 주장전에서 맞붙었다. 삼성화재배와 달리 금용성배는 세기의 대결로 전 세계바둑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몽백합배와 같은 중국룰이다. 타이젬에서 국내 최초로 보도했던 커제의 "7집반은 규정에 문제가 있다"는 인터뷰에서도 보듯, 커제는 7집반 공제일 경우 백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금용성배 주장전에서 돌을 가린 결과 이세돌이 백을 잡았다. 몽백합배와 같은 7집반 공제에서 백을 잡게 되면 한국 선수들은 일단 기분이 좋다. 국내기전이 6집반 공제이기 때문에 마치 1집을 이득본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
하지만 커제가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백이 아니라 흑이었고, 7집반 공제에서 백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돌은 또 다시 패했다.
타이젬에서 선정한 2015 10대 뉴스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에서 보듯, 커제가 2015년을 빛낸 세계일인자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유일한 세계대회 2관왕(바이링배, 삼성화재배)인데다가 LG배 8강전 강동윤과의 승부를 제외하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1년 내내 단 한 판도 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전적과 최근 컨디션, 기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커제가 이세돌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선 세간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 애국심이 반영되었을까. 약 6000명의 타이젬 회원들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선 이세돌의 3-0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31%(1835명), 3-2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23%(1379명)으로 가장 많았다.
우선 첫 째, 몽백합배 결승전은 제한시간이 3시간이다. 지난 삼성화재배 4강전 3번 승부에서 이세돌은 마지막 초읽기까지 몰리며 사투를 거듭한 반면, 커제는 초읽기에 조차 몰리지 않았다.
삼성화재배의 제한시간은 2시간. 2시간은 초일류 기사들의 승부에서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것도 우승트로피가 가시권에 들어온 4강전에서 2시간조차 다 쓰지 않고 즉각 다음 수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 그렇게 승리한 바둑에서 실수라고 할 만한 수가 단 한 수도 없었다는 점이 커제가 여느 일회성 세계타이틀 홀더와는 분명하게 차별화 되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세돌은 제한시간이 긴 바둑에 능하다. 이세돌의 천재성과 번뜩이는 기지, 속기전에서 항상 탁월한 성적을 냈던 점 등으로 이세돌이 속기바둑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바둑 팬들도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
라이벌 구리와의 10번기 기획이 한창이었을 때, 이세돌은 제한시간으로 4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구리가 흔쾌히 받아들여 10번기는 현존하는 어떤 세계대회보다 긴 시간인 4시간 바둑으로 시작되었고, 비교적 착점 속도가 빠른 구리 보단 이세돌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세돌이 커제에게 처음으로 패했던 삼성화재배는 제한시간 2시간, 상대전적 2패를 안고 대국했던 금용성배는 제한시간이 1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몽백합배 결승은 제한시간 3시간으로 현대바둑의 관점에서 본다면 장고대국에 속한다. 이쯤되면 착점 속도가 구리를 능가하는 커제 보다는 이세돌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승부사 이세돌이 전력을 투구할 수 있는 여건이 모두 갖춰졌다는 점이다. 이세돌은 2002년 제15회 후지쓰배에서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2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매년 세계대회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TV아시아 선수권과 같은 미니세계기전 트로피 개수까지 합한다면 이세돌은 도합 18번의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커제 이전엔 고작 두 번째 세계대회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 했던 중국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기록이라고 밖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24번의 세계대회 우승 경력으로 중국에선 거의 신격화 된 이창호의 뒤를 이어 이세돌은 오랜 시간 세계일인자로 군림했다.
한국에겐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 2013년,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5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중국에선 입이 근질근질 했지만 마지막 승부가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녜웨이핑과 마샤오춘 같은 중국바둑 레전드들이 '드디어 한국바둑을 넘어섰다!'는 멘트를 한 것은 그해 12월 마지막 세계대회 결승에서 탕웨이싱이 이세돌을 꺾고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 날이었다.
무려 11년 동안 세계타이틀 홀더로 군림하던 이세돌이 처음 무관으로 전락한 날이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점과 맞물려 국내에선 박정환이 이세돌을 제치고 랭킹1위로 올라섰다. 이세돌이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저는 일인자가 아니지 않나. 일인자는 (박)정환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세돌 또한 이젠 후배들이 더욱 성장해 중국과 맞서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설혹, 이세돌이 현 시점에서 승부세계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바둑 일인자였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0번기 승리 직후 이세돌은 세계대회 우승을 자신의 목표로 천명했고, 2013년 삼성화재배 이후 무려 2년 만에 드디어 그 기회를 잡았다.
안 그래도 전력을 다해야 할 승부임이 확실한데, 커제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이세돌을 도발했다. 몽백합배 결승 진출 직후, 커제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세돌이 나에게 두 판을 내리 패했음에도 승산을 50%라고 얘기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가 이길 확률은 5%"라고 얘기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세계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상대를 이런 식으로 자극한 것은 세계바둑 역사상 처음이다.
지금의 커제가 그렇듯, 이세돌 또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승부에서 늘 강한 면모를 보였다. 전 세계 바둑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결승에서 승부사 이세돌이 전력을 다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승부를 쉽사리 예측하긴 어렵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명승부가 펼쳐질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승전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세계바둑 역사상 최초로 자타공인 세계일인자 칭호를 부여 받은 사람은 바로 이창호였다.
조훈현이 초대 응씨배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이후에도 한동안 고바야시고이치, 다케미야마사키, 마샤오춘 등 일본과 중국 고수들이 군웅할거 양상으로 각종 세계대회를 번갈아 가며 우승했던 것.
이창호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세계대회에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전 세계 바둑계를 평정한 인물이 나온 것이었고, 한 때는 이창호 개인의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중국이라는 한 국가의 전체 우승 횟수를 상회할 정도였다.
이창호의 뒤를 이어 세계일인자가 된 이세돌은 2003년 LG배 결승에서 이창호를 꺾고 우승하며 정식으로 왕좌를 이양 받는다. 한국 입장에선 기분 좋은 세습이었고, 중국에선 땅을 칠 노릇. 하지만 이번 이세돌과 커제의 승부는 다르다.
만약 커제가 승리한다면, 당분간 커제가 세계일인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최초로 일인자 이양이 다른 국적의 선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세계일인자였던 이세돌을 세계대회 결승5번기에서 물리쳤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이 커제가 왕좌에 오르게 된다.
이세돌과 커제, 누가 기선 제압에 성공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타이젬에서는 오는 30일 오전10시30분(한국시간) 결승5번기 제1국을 대국시작과 동시에 소소회장 류민형 프로의 해설로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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